[번아웃] 번아웃은 게으른 게 아닙니다
“요즘은 왜 이렇게 집중이 안 되지…”
“자꾸만 피로가 밀려오고, 손에 일이 안 잡혀요.”
“그냥 다 내려놓고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해본 적 있으신가요?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설계사무소에서, 그리고 지금은 법무팀에서.
두 세계는 너무도 다른 언어를 쓰지만, 번아웃은 비슷한 얼굴로 찾아왔습니다.
설계사무소에 있을 때는 늘 야근이 일상이었습니다. 퇴근은 해도 일이 끝나지 않았고, “이번 주말만 나와 달라”는 말은 무한 반복이었고, 밤 11시에 도면을 고치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이번엔 좀 일찍 끝났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그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자문 요청, 영업일 기준 이틀 남은 답변 마감, 문서가 넘어가고 나면 다시 시작되는 의견 보완과 조정안 검토. 키보드를 붙잡고 앉아 있어도 머릿속은 흐리고, 메일 답장을 쓰다 말고 창을 닫아버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왜 이 정도도 못 견디지?” 하는 자책이 시작됩니다. 그게 바로 번아웃이 들어서는 문턱이라는 걸, 저는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일을 멈추면 어딘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쉬겠다는 말을 하면서도,
“일단 이번 일만 끝나고요”,
“팀 분위기가 그래서요”,
“사실 저보다 더 고생하는 분들도 많고요”
라는 변명을 덧붙입니다.
설계사도, 변호사도, 자신을 ‘프로’라고 여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라는 말이 종종, 쉬어야 할 타이밍을 놓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제가 빠지면 일이 멈춰요.”
“다들 너무 바빠서 제가 더는 빠질 수 없어요.”
그 말은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무너지고 있는 건 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조직은 사람을 갈아 넣어서 돌아가지만, 사람은 갈린 채로 계속 일할 수 없습니다.
번아웃은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라, 지나치게 성실했던 사람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일종의 경고입니다.
쉰다는 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날 힘을 되찾는 과정입니다.
도면을 덮는 용기,
메일함을 닫는 결단,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는 그 순간이
당신이 다시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설계사무소의 도면 앞에서,
또는 자문의견서 초안 앞에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을 당신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잠시 쉬셔도 괜찮습니다.
2025.05.02.
이 규 황
변호사 | 건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