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감정] 못 받고 타절당한 내 설계비는 어떻게 정산될까? 설계용역비 감정
설계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만 해도 모두가 아름다운 미래를 꿈꿉니다. 하지만 인허가 문제, 자금 조달 실패, 혹은 건축주와의 의견 충돌로 프로젝트가 중간에 엎어지는 일은 실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이때 가장 골치아픈 문제가 남습니다. 지금까지 일한 여러분의 설계비는 과연 얼마나 정산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건축사님들이 계약서에 적힌 ‘기성금 지급 조건’을 말씀하시고는 합니다. 계획설계 납품을 마쳤으니 20%는 안전하게 확보했다는 등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법정에 들어서고 나서는 곧 이런 순진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건축과 법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설계용역비 감정 과정과, 건축주 및 설계자 등 건설감정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현실적인 부분들을 짚어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실무적 함정은 계약서에 명시된 ‘기성금 지급 약정’의 법적 의미입니다. 건축주와 건축사가 맺은 계약서를 보면 보통 계획설계 20%, 중간설계 30%, 실시설계 50% 식의 지급 비율이 적혀 있습니다. 분쟁이 터지면 설계자는 이 비율대로 돈을 달라고 주장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기성금 지급시기에 관한 약정은 ‘설계용역계약이 끝까지 무사히 완료되는 것을 전제로’ 업무 단계에 따라 비용을 지급하겠다는 일정표에 불과합니다. 프로젝트가 중도 해지되면 감정인은 계약서의 대금 지급 비율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전체 업무량 대비 실제로 완성된 도면의 비율인 ‘기성률’을 밑바닥부터 다시 산정하게 될 수 있습니다.
설계용역비를 감정하는 방식에는 크게 ‘기성고 비율에 대한 대가 산정 방식’과 투입된 인건비 등을 따지는 ‘실비정액가산방식’ 두 가지가 있습니다. 도면이 어느 정도 형태를 갖췄다면 기성고 방식을 쓰지만, 초기 단계에서 계약이 깨지거나 기성률로 산정하기 불합리할 경우 감정인은 실비정액가산방식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치명적인 함정이 발생합니다. 주택의 배치도 한 장을 뽑기 위해 건축사는 수십 번의 대안을 스케치하고 밤을 새우며 건축주와 협의합니다. 하지만 실비정액가산식은 철저히 증빙에 의존하므로, 창작의 고통과 무수한 시행착오를 타임시트와 영수증으로 완벽히 입증해 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투입비 내역이 명확하지 않아 감정인의 주관이 개입되거나 객관성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기 십상입니다.
실무에서 또 하나 억울한 부분은 바로 ‘기획업무’와 ‘사후설계관리업무’의 누락입니다. 본격적인 도면을 그리기 전, 현장을 조사하고 규모를 검토하는 기획 단계는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설계 노력의 11% 이상을 차지할 만큼 고되고 중요한 작업입니다. 공공대가기준에서도 기획업무를 전체 건축설계업무의 3~8%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 계약 시 계약서에 ‘기획업무’나 ‘사후설계관리업무’를 구체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계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원 감정 과정에서 일부 감정인들은 업무 범위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설계용역 범위를 좁게 해석하여, 애써 고생한 기획업무의 가치를 평가에서 통째로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건축설계는 설계도서를 완성하는 도급계약의 성격과, 건축주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노무를 공급하는 위임계약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고도의 지식 서비스입니다. 법관들은 여러분이 도면 위에서 흘린 땀방울의 감성적 가치를 알아서 계산해 주지 않습니다. 프로젝트가 엎어진 뒤에 법원 감정서에 인쇄되어 있는 숫자들을 원망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진정한 프로라면 선을 긋기 전, 계약서에 업무의 범위(기획, 설계, 사후관리 등)를 명확하고 세밀하게 쪼개어 명시하는 일부터 신경써야 합니다. 그 노력이 법원의 잣대에 따른 계산기 앞에서 창작자의 정당한 대가를 지켜내는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방패가 될 것입니다.
2026.07.03.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