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회피의 역사에서 비롯된 감리제도의 비극
건설 현장에서 발주자의 감독권한이 민간으로 넘어간 역사는, 역설적으로 안전이라는 국가의 의무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떠넘겨온 과정과 궤를 같이합니다. 현재의 건설사업관리(CM)와 감리의 통합 모델은 발주자가 마땅히 져야 할 결정권자로서의 리스크를 민간에 전가하고, 사고 시 민간에 책임을 물어 피해를 보상받고자 하는 책임의 외주화라는 대단히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결과물입니다.
1. 권한과 책임의 분리, 책임 회피의 연혁
우리나라 감리제도의 변화를 들여다보면, 국가와 공공 발주자가 스스로의 감독 역량 부족을 민간 전문가의 희생으로 해결하려 했던 흐름이 선명합니다.
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 참사 이후,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과 부실 감독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이에 1994년 발주청의 감독 권한을 민간 감리원에게 통째로 넘기는 책임감리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겉으로는 전문성 강화를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행정청이 져야 할 관리 감독의 부담과 사고 발생 시의 비난 화살을 민간으로 돌리는 법적 방어막을 구축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2013년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한다는 명분으로 감리를 건설사업관리(CM) 체계 안으로 통합시켰습니다. 이는 공공의 안전을 지키는 **감리(독립적 감시자)**를 발주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CM(사익 추구형 대리인)**의 하부 조직으로 편입시키는 치명적인 악수(惡手)였습니다.
2. 발주자를 대행하는 ‘대리인’은 결코 ‘감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발주자의 감독권을 민간 CM 사업자에게 넘긴 현행 구조는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결함을 가집니다.
발주자의 감독권은 공사가 잘 되는지 지켜보는 소극적인 감시권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위험을 방지해야 할 적극적인 행정적·사회적 의무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를 민간 사업자에게 외주의 형식으로 떠넘기는 순간, 감독의 동력은 공공의 안전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용역 계약의 이행의무 수준으로 격하됩니다. 민간 사업자는 계약을 준 발주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닙니다. 갑(甲)의 지시를 받는 자가 어떻게 갑(甲)을 견제할 수 있을까요?
CM은 발주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사비를 깎고 공기를 단축하는 데 집중합니다. 반면 감리는 안전을 위해 공기를 늦추고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보완을 요구할 것이 요구됩니다. 발주자가 자신의 감독권을 CM에게 떠넘긴 현 체제에서는, CM 사업자가 발주자의 사업적 손해를 무릅쓰고 감리자로서의 칼날을 세우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현행 건설사업관리 제도 하의 감리자는 사고 발생 시 공무원에 준하는 처벌을 받으면서도(의제공무원), 실질적인 현장 통제권은 발주자의 승인 아래 제한적으로만 행사합니다. 국가가 직접 행사해야 할 공권력(감독권)을 민간에 빌려주고, 결과에 대해서만 엄격한 잣대를 대는 것은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이자 무책임의 소치입니다.
3. 결론
전문가 집단의 권위는 제도가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도가 얼마나 상식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처럼 발주자의 감독권한을 CM이라는 명분으로 민간에 떠넘긴 채, 사고가 나면 감리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구조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건설 현장의 안전을 확보하고 싶다면, 발주자는 스스로의 감독 의무를 직시하고 CM과 감리를 엄격히 분리해야 합니다.
발주자가 오롯이 자신이 져야 하는 책임을 체계적으로 외주화하는 동안,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그만큼 얇아지고 있다는 것을, 삼권분립의 각 기둥이 모두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2026.05.01.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