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리와 새로운 생각들
이 회사에 들어온 뒤, 제가 회사에게 적지 않은 신뢰를 주었던 모양인지 몇 달 만에 법무팀장이라는 자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전 회사에서도 명목상 리더이기는 했지만 팀원은 단 한 명뿐이라 사실상 혼자 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그러나 여기에서는 여러 팀원을 이끌며 실질적인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조직의 흐름과 감정, 의사결정의 무게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다가오고는 했습니다. 1년 넘게 법무팀장으로 지내며 쌓인 생각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스며든 감정들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풀어 보려고 합니다.
팀장이라는 자리는 겉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난도가 높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팀장을 지시하고 업무 방향을 잡는 사람 정도로 상상하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앉아보면 그 정의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팀장은 수많은 판단과 선택지들 사이에 끼어, 때로는 누군가의 실수를 대신 감싸야 하는 방패가 되며, 팀원들의 감정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을 흡수하는 완충재가 되기도 합니다. 혼자였다면 절대 감당할 수 없었을 업무들을 팀을 통해 해낸다는 점은 큰 장점이지만, 그만큼 컨트롤할 수 없는 변수들까지 함께 따라오고는 합니다. 사람을 통해 일하는 일에는 그 사람의 삶 전체가 함께 묻어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칭찬받는 리더이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래도 아직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기 도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저도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순간이 생기고, 때로는 팀원들의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 때도 찾아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역시 불편해지고, 상대도 불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저는 아직 그런 기분에 충분히 익숙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익숙해질 수 있을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 감정을 견디는 것 또한 제가 해야 할 일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제 조금씩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서는 모두에게 좋은 상사이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바람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입지요. 누군가가 실수했을 때 그것을 지적하기 전에도 그 사람이 받을 상처와 이후의 관계가 먼저 떠오르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도 혹시 이 판단이 누구에게 불필요한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판단은 결국 누군가의 감정 위를 지나가기 마련이라 그 길은 늘 험하고 조심스럽습니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내가 아직 나이를 덜 먹어서 이런 고민을 하는 걸까, 팀장이라는 자리에 필요한 냉정함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세상의 냉혹함을 아직 덜 배운 것일까. 그런데 솔직히 말해, 저는 그 냉혹함을 굳이 서둘러 배우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밀어내며 만들어지는 리더십보다는, 조금 미숙해 보일지라도 사람을 이해하며 쌓아가는 리더십이 결국 더 오래 간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 자리는 오로지 이성적인 힘만을 요구하는 자리처럼 보이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감당하고 포기할 것인지보다 어떤 마음을 잃지 않고 가져갈 것인지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팀원들이 실수했을 때 나의 언행은 그 사람의 성장 가능성을 닫아버릴 수도 있고, 반대로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업무가 과중한 시기에는 팀의 피로를 대신 흡수해야 하고, 갈등이 생기면 감정의 매듭을 풀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역할들은 어떤 매뉴얼에도 적혀 있지 않고, 누구도 미리 알려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팀장은 매일 조금씩 외로워지고, 매일 조금씩 단단해지는 자리가 아닐까 합니다. 저 또한 이 과정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를 이끈다는 것은 단순히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 아니라, 그 길에서 생겨나는 책임과 감정의 무게까지 함께 짊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또렷하게 깨닫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부담이 언젠가 제게 완전히 익숙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자리에서 너무 쉽게 냉혹해지지 않겠다는 마음, 그 마음만은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마음을 지키는 동안 나는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은 사람이겠지요.
2026.01.05.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