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법] 이자가 없으니 증여라고 주장한다면

변호사 · 2025. 12. 9.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상대방이 가장 흔히 꺼내는 말 중 하나는, 이자는커녕 계약서 한 장도 없었으니, 애초에 증여 아니었느냐는 주장입니다. 처음에는 단지 잠시 도와달라는 부탁으로 시작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은 전혀 다른 의미로 돌아옵니다. 한때의 신뢰가 법정에서는 ‘증여’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많은 분에게 낯설고 억울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법은 관계의 깊이보다는 거래의 성격을 따집니다. 돈을 주고받은 당시의 의사, 대화의 흐름, 금전의 사용 목적, 변제에 대한 약속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요. 즉, 이자가 없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증여로 단정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돌려받을 의사가 있었는지, 빌린 사람이 갚을 약속을 했는지가 핵심입니다.

1. ‘증여’와 ‘대여’의 차이는 의사표시에 있습니다

증여는 말 그대로 무상으로 재산을 주는 행위입니다. 돌려받을 생각이 없는 돈,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반면 대여는 반환을 전제로 한 금전의 이동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송금 한 번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는 전혀 다르지요.

예를 들어 상대방이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했고, 당신이 ‘당장 이체할게’라며 송금했다면, 이는 통상 대여의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법원은 실제 대화 내용과 관계의 흐름을 꼼꼼히 봅니다. 변제 기한을 정했는지, 변제 의사를 표현했는지, 이후 연락이 어떻게 오갔는지가 결정적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빌린 돈’임을 뒷받침한다면, 이자가 없더라도 대여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 실제 재판에서는 이렇게 판단합니다

법원은 단순히 이자 유무만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실무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이 함께 고려됩니다.

  • 송금 이후 상대방이 ‘조만간 갚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경우
  • 금액이 상당히 커서 일상적 선물로 보기 어려운 경우
  • 돈을 받은 사람이 이후 같은 계좌로 일부라도 상환한 정황이 있는 경우
  • 제3자에게 ‘누구에게 돈을 빌렸다’고 말하거나 기록을 남긴 경우

이러한 정황이 모이면, 비록 이자가 없고 문서도 없어도, 법원은 ‘변제 의무가 있는 대여’로 판단합니다. 반면 금액이 소액이고, 송금 당시나 이후에도 상환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면, 증여로 보거나 금전거래 자체를 입증하지 못해 패소할 위험도 있습니다.

3. 관계가 얽혀 있을수록 더 꼼꼼히 정리해야 합니다

지인, 가족, 연인 사이의 금전거래는 감정이 개입되어 있어서 사회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가장 복잡합니다. 선의로 도운 일이라 하더라도, 돌려받지 못했을 때 감정이 법적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관계가 가까울수록 오히려 더 명확히 정리해야 합니다.

대화 내용, 송금 내역, 대여의 경위, 갚기로 한 시점 등을 짧게라도 정리해 두면 훗날 법정에서 큰 도움이 됩니다. 인간관계의 신뢰는 기록 자체를 멀리하겠지만, 법정에서는 기록으로만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4. 법은 말보다 기록을 믿습니다

금전거래에서 감정은 언제나 흐릿하게 변합니다. 처음에는 믿음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후회가 되고, 결국엔 오해가 됩니다. 하지만 법은 그런 감정의 변화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대신 당시의 대화, 문자, 송금 기록 속에서 당신의 의사를 읽습니다.

이자가 없다는 이유로, 차용증이 없다는 이유로, 당신의 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돈이 어떤 약속 위에서 오갔는가’입니다. 그 약속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권리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2025.12.09.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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