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뢰를 잃은 권위, 회복은 가능한가
전문가 집단의 권위는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뢰’입니다. 신뢰가 있을 때는 국민과 사회가 전문가의 판단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그 권위는 제도와 법률이 아무리 보장해 준다 해도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해집니다.
건축사의 경우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한 번의 부실 설계, 한 차례의 무책임한 대응만으로도 발주처와 시공사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건축사의 도장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한 건물에서 하자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그것이 개인의 잘못을 넘어 집단 전체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결국 제도적 규제가 강화되고, 행정 절차는 복잡해지며, 건축사는 오히려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를 점점 잃게 됩니다. 신뢰의 상실은 곧 권위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다른 전문직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안전보다 이익을 앞세운 순간, 국민은 더 많은 행정 통제를 요구합니다. 변호사가 사건의 본질보다 수임료에만 몰두하는 순간, 법원은 점점 더 세세한 규제와 절차를 만들어 냅니다.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는 항상 규제가 들어섭니다. 이는 전문가에게도 손실이지만, 국민에게도 손실입니다. 규제가 많아질수록 전문적 판단의 창의성과 속도는 떨어지고, 결국 사회 전체의 효율성이 희생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뢰를 잃은 권위는 회복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윤리적 요청이 아니라, 실질적인 생존의 문제입니다. 전문가 집단이 스스로 성찰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외부적 강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들 것이고, 그 과정에서 권한과 자유는 점점 더 축소될 것입니다. 그러나 회복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신뢰는 오랜 시간의 성실한 태도, 반복되는 책임 있는 행동, 그리고 무엇보다 투명한 기록과 소통을 통해 서서히 되찾을 수 있습니다.
건축사가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도면의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 변명보다는 원인을 기록하고 개선을 약속하는 태도, 하자가 지적되었을 때 방어보다 해결을 우선하는 자세, 회의 자리에서 발주처의 질문에 끝까지 귀 기울이는 기본적인 습관들이 그 출발점입니다. 국민은 전문가의 완벽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수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더 주의 깊게 지켜봅니다.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태도가 신뢰를 한 겹씩 쌓아 가는 것입니다.
신뢰를 잃은 권위는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지만, 다시 쌓기 위해서는 수많은 날의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성실함은 개별 전문가의 태도에서 시작되어, 집단 전체의 문화로 이어질 때 비로소 제도적 권위와 결합해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전문가의 권위는 결국 ‘전문성’이 아니라 ‘신뢰’ 위에 서 있습니다. 제도는 이를 보장해 주는 울타리에 불과합니다. 울타리가 무너져도 다시 세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울타리를 지탱하는 토대, 곧 국민의 신뢰가 무너진다면 아무리 화려한 자격증도 그저 종이 한 장에 불과해집니다. 건축사의 도장, 변호사의 변론, 의사의 처방 모두가 같은 원리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그 단순한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025.10.23.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