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속 위험한 문장들 (3)] ‘추가용역’이라는 말의 함정

변호사 · 2025. 10. 6.

계약을 체결할 때는 발주자도 설계자도 필요한 모든 과업 범위를 다 정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사업이 진행되다 보면 언제나 새로운 요구가 등장합니다. 설계 과정에서는 “이 정도는 그냥 추가로 해 주실 수 있지 않나요?”라는 말이 흔히 나오고, 감리 과정에서도 “이 부분도 같이 챙겨 주세요”라는 부탁이 따라옵니다. 그렇게 시작된 한마디가 결국 수천만 원, 수억 원의 대가를 둘러싼 분쟁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바로 ‘추가용역’이라는 말에 숨어 있는 함정 때문입니다.

건축주의 시각에서 보겠습니다. 건축주는 설계 계약서에 담긴 과업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기술적으로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도면을 조금 더 수정하거나, 인허가 과정에서 보완 자료를 내는 것은 당연히 설계자의 업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설계자가 “이건 추가용역이니 비용을 더 내셔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면 당황하게 됩니다. 발주자로서는 이미 설계비를 지불했는데, 왜 또 돈을 내야 하는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건축사의 입장은 다릅니다. 설계 범위는 계약서와 제안서, 업무지침 등에 의해 정해져 있지만, 실제 업무 과정에서 건축주는 설계사에게 계약서에 없는 요구를 무심코 던집니다. 예를 들어 설계안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요구, 예상치 못한 관계기관 협의, 원래 계약에 포함되지 않은 구조·설비 추가 검토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것까지 모두 기존 설계비 안에서 감당하다 보면 사실상 적자를 보게 되고, 회사 운영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사들은 “추가 설계는 반드시 비용을 보전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법원과 실무는 이 문제에 대해 원칙을 세워 왔습니다. 계약서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분명한 업무라면, 추가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입장입니다. 다만, 단순히 설계 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보완·조정은 원래의 계약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어디까지가 ‘계약 범위 내 보완’이고, 어디부터가 ‘추가용역’인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예를 들어 대법원은 “계약의 기본 목적에 당연히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업무라면 별도 대가를 청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설계 변경으로 업무량이 현저히 늘어난 경우에는 추가비용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실무에서는 이런 다툼이 자주 벌어집니다. 건축주는 “계약서에 ‘설계 변경 요청 시 보완’이라고 적혀 있지 않느냐”라고 주장하고, 건축사는 “보완이 아니라 사실상 전면 재설계 수준이다”라고 반박합니다. 계약서 문구가 모호하다면 양쪽 모두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추가용역’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위험합니다. 구체적 정의 없이 들어가는 순간, 분쟁의 씨앗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건축주는 계약 체결 시 설계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설계변경 비용을 지급하여야 하는 기준, 추가 업무가 발생할 경우 비용 산정 방식과 절차를 미리 정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 건축사는 추가용역 요구가 있을 때 반드시 서면으로 논의하고, 업무 범위·비용·일정을 명확히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단순히 “그때 구두로 다 협의했다”는 말은 법정에서 별다른 효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실제로 분쟁 초기 단계에서는 내용증명이 큰 힘을 발휘합니다. 건축사가 추가비용을 주장한다면, 구체적 근거와 비용을 명시해 내용증명으로 통보해야 하고, 건축주 역시 동의할 수 없다면 바로 이견을 명확히 밝혀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묵시적으로 합의했다”는 건축주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계약서는 적당히 작성해서 모든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문서가 절대 아닙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그 문서의 빈틈이 현실 속에서 커다란 분쟁으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빈틈은 결국 법률해석의 문제로 해결되어야 하고,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게 됩니다. ‘추가용역’이라는 모호한 표현 하나가 건축주에게는 예기치 못한 비용 부담을, 건축사에게는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계약서에 그런 위험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점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추가용역 여부는 단순한 상식이나 경험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계약 문구와 실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계약 해석, 일반 자문, 내용증명 발송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2025.10.06.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네이버 블로그 원문 보기 ↗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