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안전특별법 발의안에 관한 짧은 의견(4)_예방 중심의 제도 정비 필요성
최근 건설안전특별법(안)의 ‘매출액 3% 과징금’ 조항이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해당 조항에 대해 건설업계는 강력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반면,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어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법적 처벌 중심의 접근 방식 대신 예방적 관리체계를 중심으로 법안을 재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런 논의의 중심에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영국의 건축안전법(Building Safety Act 2022)입니다. 이 법은 2017년 런던 그렌펠 타워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를 계기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마련된 법입니다. 기존의 소극적·단편적 규제 방식을 벗어나, 건축물의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안전을 관리하고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구조로 설계된 것이 특징입니다.
첫째, 건축 전 과정에 걸친 ‘게이트웨이(Gateway)’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건축 기획-설계-시공-준공-사용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마다 안전 관련 서류 및 설계를 당국으로부터 승인받아야 하며, 적절한 인증 없이는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없습니다. 이는 무리한 일정 단축이나 설계 변경으로 인한 사고 위험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장치로, 특히 다중이용시설이나 고층 주거시설에 효과적인 안전 장벽 역할을 합니다.
둘째, ‘디지털 안전파일(Golden Thread)’ 시스템을 통해 모든 고위험 건물의 정보를 디지털 방식으로 기록·관리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이 파일에는 설계 의도, 사용 자재, 구조 사양, 시공 중 변경 이력, 유지보수 기록까지 포함되며, 건물 해체 시까지 일관되게 관리됩니다. 이는 단순한 정보 축적을 넘어, 향후 사고 발생 시 신속한 원인 파악과 대응을 가능하게 하며, 유지관리자와 입주민 모두가 건축물의 안전 상태를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합니다.
셋째, ‘Building Safety Manager’ 개념을 통해, 건물 사용 중에도 지속적으로 안전을 점검하고 필요한 개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법적 책임을 부과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건축물의 구조적 안전뿐 아니라, 화재 대피 계획, 피난설비, 통신 체계 등 전반적인 안전 인프라를 통합 관리해야 하며, 정기 보고 의무도 포함됩니다.
이 모든 시스템을 감독하는 독립 전담기구로는 ‘건축안전 규제청(Building Safety Regulator)‘이 신설되었습니다. 이 기관은 영국보건안전청(HSE) 산하에 설치되었으며, 고위험 건물에 대한 인허가, 규정 위반 시 제재 조치, 시민 교육 및 산업 지침 제공 등 포괄적 권한을 행사합니다. 우리나라의 행정체계와 비교할 때, 단속 중심이 아닌 ‘전문성과 예방 중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산업안전보건법, 건설기술진흥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다층적 규제체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 사고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처벌 강화를 통한 사후 대응보다는, 건축 전 단계에 걸쳐 위험을 사전에 관리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까닭일지도 모릅니다.
이에 따라 ‘예방 중심’의 입법 철학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자율점검제도와 연계된 세제 혜택, 안전관리 우수기업 인증제도 운영 등이 그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민간 건설사에 의무를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 발주처의 안전관리 책임도 제도적으로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건설안전특별법이 과징금이라는 상징적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으로 산업 전반의 안전 문화를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법의 설계 철학 자체가 달라져야 합니다. 단속보다 예방, 책임 추궁보다 정보 공유, 사후 처벌보다 사전 구조 설계에 힘을 실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과징금의 크기보다, 그 법이 얼마나 현장을 바꿀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2025.07.22.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