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우리네 삶은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밀도 높은 도시에서 매 순간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은 여전히 유효하고, 아주 오랫동안 본질적으로 반박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의 울타리 밖에 내몰리면 어떤 가치를 따라 살아가야 할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삶의 행복이나 고통은 대부분이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타인과 관계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계속 인식하며, 비로소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행복이나 슬픔이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생산된 것이 있는지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모진 사회에서 웃고 울고 상처받고 위로받으며 매일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통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고 미움받고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겁박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사실, 제 안에 자리잡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받아들인 만큼, 아니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만큼만 제 안에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그 사람이, 제가 이해하고 있는 만큼만 존재하는 사람은 아니겠지요. 저와 소통하며 드러내지 않은, 드러내지 못한 사실이 그 사람 안에서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와 소통하며 그 사람의 조각이 드러났더라도, 제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에 제 안으로 그 조각이 전부 흘러들어올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더 많이’받아들이고 실재(實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가 내 안에 표상되어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소통하는 사람들은 딱 제 그릇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만큼만 제 안에서 존재합니다. 저는 제 안에 있는 그러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실재의 대부분이 제 안에 들어와 널찍이 자리잡고 있고,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편린이 제 마음 속 어딘가에 놓여 있겠지요. 제가 받아들인 사람들은 스마트폰처럼 자동으로 업데이트도 되지 않습니다.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 조각들을 다시 내려받아 정리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마지막 기억으로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환희에 가득 찬 순간부터 밑바닥에 침잠해 짓눌린 순간까지, 우리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누군가와 이를 공유한다기보다는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자리잡은 세상에서 혼자 즐거워하고 우울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제 안에 자리잡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제 안의 세상은, 제가 원하는 만큼의 부피와 밀도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넓히고 더 넓은 세상을 본다는 것은, 그러한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2023.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