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설계를 하는가(2)_갑을

건축사 · 2023. 8. 28.

[대한민국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우리 헌법은 ‘평등의 원칙’ 을 인간의 존엄성, 행복추구권의 바로 뒤에 두어 평등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대부분의)상거래 당사자들이 ‘실질적으로’ 평등한 경우는 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단 대한민국 뿐 아니라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에서 형성된 사회질서란 그런 것이겠지요.

사회생활상 거래에는 항상 ‘더 아쉬운 사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더 아쉬운 사람이 덜 얻어가며 계약이 체결되는 모습, 흔히 갑과 을로 표현되는 계약당사자들의 모습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계약자유의 원칙과 자기책임의 원칙은 오히려 갑을관계를 장려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법률관계를 형성하고 소위 ‘사회생활’을 영위하며, 자신의 선택에 일응의 책임을 지며 살아갑니다. 더 높은 곳에 서기 위해 스스로를 불태우며 노력하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갑을관계가 드러나는 것 또한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적인 갑을관계를 바라볼 때 무의식적으로 ‘갑’은 악하고 ‘을’이 선한 당사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사자의 지위와 도덕성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추정하는 것이지요. 갑을관계와 도덕성이 개별 계약에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오랜 시간 축적된 사회의 기록은 두 가지 성질이 대단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제가 짧은 시간 동안 안에서 지켜본 설계판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가 설계사무소에서 여러 밤을 지새우며 무리를 하고 있었기에 더욱 건축가들의 처우에 대한 불만에 공감이 가기도 했지요. 막연히 ‘이 나라의 건축가들은 천대받고 있고, 나쁜 건축주들 때문에 손해보며 살고 있다’는 고정관념이 형성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운이 좋았기에 좋은 인연만 만나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설계사무소를 다니며 마주한 여러 가지 경험들로 인하여 대한민국 설계판에 대한 소명의식이 싹트기도 했지요.

말씀드린 것처럼, 사실 사회적 지위와 도덕성 사이에 어떤 논리적 인과관계가 명확히 관찰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론적으로 수많은 사회적 경험이 축적되며 정비례 혹은 반비례의 경향성이 보이더라도, 항상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건축설계는 대부분의 건축가들의 자아실현 수단입니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건축가들에게 생계유지 수단이기도 합니다. 전자와 후자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기본적인 모럴을 지켜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설계판이 팍팍해질수록 설계자들의 윤리의식도 점점 옅어져 갈 수밖에 없겠지요.

불경기가 찾아오면 조금 더 절박한 누군가가 저가 수주를 시작하고,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단순히 설계비를 덤핑하는 것에서 나아가 설계공모에서 허황된 설계안으로 발주자를 현혹하기도 합니다. 생존의 기로에 가까워질수록 ‘건축사 윤리규정’이 가지는 의미는 점점 옅어집니다. 품위유지의무는 물론이고, 법률 준수의 의무도 희미해지게 됩니다. 건축물의 안전을 담보하는 첫 번째 관문으로서의 설계자의 책임감도 이제는 조금씩 희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언제나 ‘을’의 위치에 있는 건축가들은 언제나 바른 사람들일까요?

답도 예상하셨겠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왜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지에 관하여 깊이 생각할 일이 요새는 정말 많아지고 있고, 드리고 싶은 말씀도 참으로 많습니다.

(다음 글에 계속)

2023.08.28.

변호사 이규황

네이버 블로그 원문 보기 ↗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