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설계를 하는가(1)_소명

건축사 · 2023. 7. 29.

20대의 대학생에게는 정치 성향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이분법으로 세상을 갈라놓는 판단이 너무나도 간단했습니다. 지금도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닙니다만, 한 살씩 더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 일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는 것이 많아지고 보이는 세상이 넓어질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며 정답이 없는 문제들로 가득하다는 것도 비로소 이해하게 되지요.

건축설계에 대한 저의 근본적인 고민도 그러한 사회적인 복잡성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기억이 닿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한 우물만 파던 청년이 설계를 그만둔 이유는, 뿌리 끝까지 오염된 설계판에 대한 염증 때문이었습니다. 행복한 상상으로 도면을 그리고 판넬을 만들며 모형을 완성하여 학기를 마칠 때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면 맞이하게 될 현실이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보아 온 건축설계 실무는 학교에서 알려 주는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건축사사무소 중 한 곳에 입사하며, 나름의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리고 반 년이 채 지나기 전에 부푼 꿈은 산산조각이 나게 되었죠. 가장 큰 회사에서 가장 큰 건축주를 만나 가장 큰 규모의 설계를 진행하면서도 상식이 파괴되는 경험이란 것은 정말 참담하였습니다. 이 회사에서도 이런데, 나가면 어떨까. 라는 허무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도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필드에 나오면서 공정과 정의가 살아 숨쉬는 꽃밭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예상보다 혹독한 현실에 놀라기는 했습니다. 그때부터 발주자와 설계자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경험한 발주자는 항상 집채만한 고급차를 타고 나타나 실현 불가능한 주문을 한 뒤 홀연히 사라졌고, 제가 경험한 설계자 동료들은 어떻게든 지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같이 묵묵히 밤을 새웠기 때문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회사에서 경험한 동료들 대부분이 책임감 하나만큼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제게 있어 ‘건축가’는, 어리석고 순진하고 답답하지만 근본만큼은 반드시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선한 설계자와 악한 발주자의 대립관계를 그려 놓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어렸기에 그런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했지요. 운이 좋게도 제가 살아오며 만난 설계쟁이들은(아버지를 포함하여) 굳이 선악을 나눈다면 선한 편에 속한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 머릿속 건축가의 스테레오타입은 나날이 굳건해져 갔습니다.


건축사법에 따르면 ‘건축사’란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 등을 수행하며 건축물과 공간 환경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건축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건축사 윤리선언 또한 아래와 같이 선언합니다.

  1. 건축사는 지구환경을 보존하고, 사회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한다.
  2. 건축사는 전문지식과 기술을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며, 건축문화 창달과 건축교육 발전에 기여한다.
  3. 건축사는 공공사회 발전에 기여하며 법규를 준수한다.
  4. 건축사는 자신의 전문지식과 능력을 발휘하여 정당한 방법으로 수탁하고 문서로 계약한 업무에 대하여 책임과 의무를 이행한다.
  5. 건축사는 명예를 존중하고 의뢰인과의 신뢰를 유지하며 의뢰 내용을 존중한다.
  6. 건축사는 정직하게 업무를 수행하며 동료 건축사의 수임업무와 지식재산을 존중한다.
  7. 건축사는 인종,종교,장애 등 사회의 여러 여건에 대해서 공정한 입장에서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8. 건축사는 정당하게 사무소를 운영하며, 적정한 실무수련 여건을 마련하고 유지한다.

건축이 공공성을 지닌 행위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헌법도 국민의 기본권에 관하여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을 위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음을 별도의 조문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건축은 단순히 토지에 건물을 올리는 사실행위에서 확장되어 미시적으로는 인접한 대지에, 거시적으로는 국민 모두의 생활기반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성을 가지게 됩니다.

건축의 본질은 설계에 있습니다. 건축적 요소를 구성하고 확정지으며, 중대한 잘못이 발견될 경우에도 과도한 비용 없이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단계가 설계 단계입니다. 건축사는 사실 대단히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건축설계에 임하여야 하는 것이지요.

제가 설계판에서 만나온 건축가들은 대부분 그런 소명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현실적인 이유로 좌절하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건축가의 소명을 이뤄내겠다는 올곧은 마음을 가슴 한켠에 간직한 사람들이었지요. 20대의 젊은 사원이 바라본 설계판에서 문제가 있는 곳이라고는 오로지 발주자, 행정청 등 외부 집단 뿐이었습니다. 설계자들이 현실에 짓눌려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세상 돌아가는 꼴을 몰라서 손해보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설계쟁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개탄스러웠습니다.

제 나름의 만화적 영웅심리가 발화한 것도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때의 제게 대한민국 건축가들은 절대적 약자이며 고통받는 선량한 주인공이었습니다. 외부 환경만 정리되면 꽃밭이 펼쳐질 것만 같았습니다. 앞으로 조금씩 말씀드리겠지만, 나름의 문제의식도 여러 방면에서 가지고 있었지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믿음도 상당하였던 어린 나이의 저는 돌연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When you can do the things that I can, but you don’t, and then the bad things happen, they happen because of you.”

피터 파커(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2016


“그렇지만, 우리의 ‘설계판’에 선한 건축가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

(다음 글에 계속)

2023.07.29.

변호사 이규황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4219122?sid=101

[압구정3구역 영향?…서울시 “설계지침 위반 건축사 지체없이 징계 요청하라”[집슐랭]

서울시가 관내 25개 자치구에 “허위 홍보나 정비사업 설계 공모에서 부정행위를 한 건축사에 대해 징계를 요청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발송했다. 통상 자치구가 건축사 징계를 요청하는 사례는 설계·감리 혹은 안전사고 등에

n.news.naver.com](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4219122?sid=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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